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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일반

Michelangelo Buonarroti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이 자연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이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이 피에타상 형식의 직접적인 계보는 중세 북구(독일) 형식의 개신(改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물 크기 이상의 마리아가 보통 크기의 그리스도를 크게 포개진 옷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안고,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內面化)시키고 있는 청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당시의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독특한 이상적 조화미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겠다.

다비드상의 오른손 엄지 손톱은 부러져 있다. 힘줄이 불끈 솟은 크고 넓적한 손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방해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돌을 캐는 채석공 소년이 모델이었다. 미켈란젤로가 평생을 바쳐 옹호했던 천대받는 자의 한 사람인 셈이다.

16세기 이탈리아, 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때였다. 교회는 참과 거짓을 결정했고, 판단의 준거를 마련했다. 저항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싸웠다. 부패한 교회와는 끊임없이 대립했고, 가난하고 버림받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다.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이 자연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이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천지창조’에서는 교회가 요구한 12사도 대신 구약의 선지자와 무녀를 그렸고, 펼쳐든 예언서를 백지로 남겨두어 성서의 말씀을 잊은 교회를 조롱했다. ‘최후의 심판’에서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무리에 이례적으로 흑인을 포함시켰다. 유럽의 팽창정책에 밀려 제 땅에서 쫓겨나 노예로 살고 있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그의 작품은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피에타 상 앞에서는 기도가 금지되었고, ‘최후의 심판’은 “성당은 목욕탕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벌거벗은 몸에 덧칠을 당했다. 필생의 작업으로 삼았던 ‘율리우스 2세묘’는 수십년 동안 착공과 중단을 번복하다 미완의 노예상 4개만을 남기고 말았다. 두 손은 뒤로 결박당했지만 왼쪽 어깨를 구부려 자신을 묶은 밧줄을 끌어당기는 노예의 모습, 교회의 억압과 권력의 의지에 결박당한 채 작업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을 읽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는 ‘거역하는 사람의 얼굴을, 천대받는 자들의 고통과 자부심을 돌에다 영원히 새겨놓았던’ 것이다.


‘거장 미켈란젤로’(전2권) 전영애 외 옮김.